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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의 경제학/우아파파의 생각

경제적 자유인을 준비하며...




88 서울 올림픽이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높이며, 

우리도 변방의 조그마한 힘없는 나라가 아닌 무었인가 할수 있다는 자신감과 의지가 생기기 시작했었습니다. 


올림픽을 앞뒤로 낙후된 판자집들은 그동안의 가난을 씻어 버리듯 철거되었으며 

그 자리는 철근콘크리트 아파트가 속속히 자리를 꿰 차지했습니다. 

지금의 이름있는 기업들은 너도 나도 아파트를 짓는 건설업에 뛰어들었고 

당시에는 수요보다 공급이 훨씬 부족했던 시기라 짓기도 전에 웃돈이 붙어 다른사람들에게 팔리곤 했습니다. 

경제성장률은 지금과 다른 두자리 숫자이고 부동산도 호황이었었습니다. 

 

마 그 즈음일겁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저의 손을 잡고 은행통장을 개설하며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돈관리는 스스로해야해! 정기적으로 통장을 통해 용돈을 줄테니깐 

너가 스스로 알아서 계획하고 관리해서 사용하렴"



당시 8살 꼬꼬마에 불과했던 저는 그 내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여 상당히 혼란스러웠습니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의 자본주의사회에서 어떠한 영향을 주는것인지.

 

경북 포항에서 있던 저는 서울에 있는 할머니댁에 설날과 추석에는 항상 6시간 걸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오래간만에 손주를 본 친척분들은 고생했다고, 이쁘다고, 용돈쓰라고 각기 다른 이유로 손에 돈을 쥐어주셨습니다. 

과자, 사탕을 사 먹고 싶었지만 저는 그것을 참고 돈만 생으면 곧장 은행으로 달려가 저금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3개월마다 붙는 이자였습니다. 

비록 종이에 인쇄된 숫자에 불과했지만 그 이자가 붙는게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경제 호황이어서인지 아님 개도기여서 인지는 몰라도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이자가 들어왔습니다. 

원금이 늘고 이자도 그에 비례해서 늘어나면서 조금만 더 노력해서 원금을 늘리면 

굳이 용돈을 받지 않아도 이자만으로 내가 먹고 싶은거 먹고 쓰고 싶은거 써도 되겠다 라고 생각하면서, 

경제적 자유인을 처음으로 꿈꿨습니다. 


유년시절이 지난후 중학교때에 아버지의 직장관계로 경기도 수원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시간은 많지만 마땅히 놀만한 거리가 없었습니다. 

친구들은 패미콤, 재믹스등 전자오락에 빠지고 슬램덩크의 주인공을 데려 놓은듯한 

농구대잔치의 멋진 경기들에 빠져있었지만 저는 그러하질 못했습니다. 

당시 저희 집은 경제적 상황이 좋지 못해서 오락기를 살, 만화책을 빌려 볼 여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저에게 집에서의 따분한 시간을 버틸수 있었던건 다름아닌 교차로였습니다. 

당시 교차로는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과는 달랐습니다. 

중고물품, 일자리, 부동산, 자동차등등 수원시내의 사람들이 애용하는 하나의 문화지였습니다. 

페이지는 100페이지에 달하였고 각종 생활 정보및 만화 , 유머등등을 싫어 놓아 생각보다 재미가 있었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다 우연히 부동산 상가란에 나온 글을 보고 어머니께 흥분하며 뛰어가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엄마 우리도 빨리 돈모아서 상가사요 1억이면 매달 월 100만원씩들어온데요 

그럼 평생 일 안하고 먹고 살수 있잖아요"




어머니는 남의돈 받는게 쉬운게 아니라고 딱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그런것이 상가건물을 지어 월세를 받으시는 분이 가까이에 계셨습니다. 

바로 작은 아버지였는데요 친척들 만나면 항상 하는소리가 

대출금 갚고 건물수리하고 세금내고 나면 남는게 한개도 없다없다. 

그말을 듣고 관리비용이 그리고 세금이 얼마가 나가는지 모른채 그냥 포기했습니다. 



지금같이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그리고 학업이 우선이었던 어린아이에게는 

그것을 아는것은 너무나 어려웠고 어른들의 말은 들어야 했거든요

(지금에 와서 이야기 하지만 그 당시의 작은 아버지는 대출이 껴있는 상가건물 1채였지만 

지금의 작은 아버지는 대출금도 없고 서울에 건물을 3채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저의 어린 시절을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자본주의에 대해서 조숙하기도 했고 

나쁘게 말하자면 너무 일찍 알아버린 영악한 아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후 10여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의 저는 어떠할까요?. 

서울의 4년제 대학교, H중공업을 거쳐 지금은 G건설사 전기 엔지니어 

어찌보면 남들 보다는 조금더 좋은 조건이기에 어느분은 부럽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유리지갑속에서 세금을 떼고 주변동료들과 술한잔 하고나면 생활비를 걱정해야하는 그저 그런 소시민일뿐입니다. 


아침 일찍 서울로 가는 출근버스에 몸을 싣고 하루종일 회사일에 치이고 집에오면 10시.

회사 선배들은 일에 빠져봐라,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취미생활을 즐기라고 하지만 

하루하루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것은 저에게는 무리인가 봅니다. 

정년이 보장되고 연장되니 좋지? 라고 하는 선배들의 말에 저는 순간 

나도 이사람들도 어릴때는 회사원이 목표가 아니었을텐데라는 생각을 가지고 

언젠간 그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는게 아닌가 두렵습니다.  

 

일과 사람에 치여 지쳐있는 저에게 요즘따라 이런 생각이 듭니다. 


'과연 내가 인생을 올바르게 살고 있는것인가? 

여행을 좋아하고 창조적인 생각을 좋아하는 내가 

딱딱한 책상과 차가운 컴퓨터 앞에서 매일 매일 무엇을 하는것이지?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무엇이지? '

 


이에 대한 답은 얼마 되지 않아서 나왔습니다. 바로 경제적 자유입니다. 

시간과 공간과 금전에 제약을 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일을 하는것.

 

지금의 제가 아닌 예전의 저는 훨씬더 인생에 대한 목표가 뚜렸다고 행복하고 똑똑했습니다. 

비록 그 구체화 되지는 않았지만 당시의 저는 언제나 경제적 자유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경제적 자유속에서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고 쇼핑을 하고 넒은 마당이 있는 집앞 마당에서 고기도 구워먹고, 

앞에 텉밭에서 신선한 야채를 따서 먹는것. 

그리고 여러 어려운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하는 삶.

 


누군가는 비웃고 무시하고 정신차리라 하겠지만 저는 경제적 자유인의 삶을 살기로 했습니다. 

타인의 행복이 저의 행복을 위해서 입니다. 


 

저는  경제전공자도 아니고 그것을 업으로 삼지도 않는 

그야말로 ' 천지 모르는 하룻강아지'가 코끼리 다리 만지듯 정도의 의미로 블로그에 글을쓰는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 진행형입니다.  

경제적 자유인에 대해서 다룰것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경제적 자유인이 쓰는글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기록은 기억은 지배하는것처럼 나중에 성공을 이룬다음에 이 글들을 쓰게 된다면 당시의 생생한 생각들, 

경제 분위기에 대해서 정확하게 쓰지 못할거 같아 먼저 쓰는것이 순서라는 생각에 이르게되었습니다. 

어찌보면 황당 무계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로그를 시작하는 이유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직장인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명서 

경험하고 부딪혔던 이야기에대해서도 다른분들에게 일말의 도움은 될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비전공자이기에 오류도 있을것이고 허무맹랑한 주장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런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는선에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경제적 자유인이 되는 그날까지 모두 힘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의 선택과 의견을 존중해주는 가족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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